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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온샘의 독서 기록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호지 / 녹색평론사)

 

《오래된 미래》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고,
그 메시지는 라다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열에 찬 명료한 묘사를 통해서
이 책은 진보의 개념 자체를 묻고,
현대 산업사회의 근원적인 병폐를 통렬하게 드러내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날 사회적·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우리 모두의 장래에 대하여
구체적인 희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위 구절은 위 책의 뒷표지에 적혀 있는 표현 중 일부이다.
이 책의 저자인 스웨덴의 여성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16년간 라다크에서 생활하며 공동체 문화와 여성의 생활에 관해 연구하였다.
그녀가 라다크에 처음 방문했던 1975년에만 하더라도 라다크는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었다.
'작은 티베트'리고 불리기도 하는 라다크는 인도 영토에 편입되어 있지만, 천년 넘게 독자적인 언어와 티베트 불교 문화를 지켜가며 자급자족의 삶을 꾸리고 있던 공동체였다.
고원 지대에 위치한 라다크는 거칠고 황량한 풍토와 불리한 자연 조건에서도 건강하고 평화로운 공동체 문화를 가꿔가고 있었다.
당시 외부인의 시각으로 라다크를 바라보던 저자는 이토록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라다크 사람들이 평정심과 풍요로움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서구의 획일화된 문화와 산업주의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저자였기에 라다크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의 근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과 오랜 시간 교류하며 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깊이있게 들여다봄으로써 점차 그녀는 라다크인들이 오랜 세월 가꿔온 생태적인 지혜와 철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서문으로 시작하여, 총 3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라다크의 전통을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으로 라다크가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일궈왔는지, 어떠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2부는 라다크에 밀려오는 서구화의 영향 속에 라다크가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였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라다크만의 이야기가 아닌, 제3세계가 서구화되는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과정을 더 혹독하게 거치면서 서구화가 되었기에 단순히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부는 저자가 라다크에서 펼친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반개발 운동을 보여준다. 
이 내용이 없었다면, 저자가 앞에서 펼쳐온 서구의 산업화와 획일적인 근대화에 대한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에 밀려온 변화의 물결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노력과 갖가지 운동들이 있었기에 사회발전의 대안을 제시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큰 힘이 실릴 수 있었다. 
 
저자는 서구식 산업개발과 직선적인 진보관, 세계무역주의가 문화적 다양성을 말살하는 일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근본적으로 지속불가능한 생활 방식이며, 기후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이 사실을 인식하고 라다크를 구원하고자 했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혜안과 노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자기 생존의 바탕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였기에 그러한 통찰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아픈 근현대사를 거치며 전통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폐허 위에서 서구식 산업화를 이루었기에 '온고지신'의 정신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이렇게 번듯하게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쾌거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희생을 치러야만 했었는지를 반드시 생각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행복도가 매우 낮으며, 10~40대 사망 이유 1위가 '자살'이고, 남녀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등 갖가지 사회 갈등으로 인한 긴장도도 매우 높다. 
이 글을 읽으며, 나는 라다크가 부러웠다. 
자신들의 문화와 고유성을 유지하며 새로운 방식의 변화와 발전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해도 충분히 부러워할 만한 일이다.
고통으로 얼룩진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는 그러한 고민과 여유가 싹틀 공간이 존재할 수 없었기에 더욱더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금 현재 라다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탄소배출 감소와 지속가능한 개발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도 이 책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아직도 이러한 외침과 노력이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이러한 책을 읽으며, 바람직한 진보와 변화에 대해 사람들이 고민하며 사회적인 흐름을 만들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고통과 갈등도 점차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공동체를 복원하고 사회의 행복 총량을 늘려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오래도록 지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