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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온샘의 독서 기록

회복적 정의(이재영 / 피스빌딩)

 

이재영 대표는 2000년부터 우리나라에 회복적 정의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대표적인 실천가이다. 

회복적 정의는 1950년대부터 범죄자의 심리와 교정 프로그램 개발을 연구해온 앨버트 이글래시 박사가 처음으로 사용한 이래, 미국의 법학자 랜디 바넷과 1970년대부터 17년 동안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 범죄·정의사무소 소장으로 재직한 하워드 제어 박사에 의해 발전·정립되었다.

하워드 박사에게서 회복적 정의를 배운 이재영 대표는 한국 사회에도 회복적 정의가 제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 학교, 사법, 조직, 지역 사회 등 여러 영역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을 발간한 것 또한 회복적 정의의 개념을 널리 알리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회복적 정의는 정의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패러다임이자 방식으로써 어떤 잘못(범죄)에 연관이 있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바로잡고 피해가 최대한 치유되도록 함께 피해와 필요를 확인하고 책임과 의무를 규명해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의미한다.(77쪽)
회복적 절차란 범죄로 영향을 받은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만약 적절하다면) 연관된 사람들과 공동체가 함께 모여 전문 진행자의 도움을 받아 범죄로 야기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78쪽)

 

회복적 정의의 반대 개념은 '응보적 정의'이다. 

현재 사법 체계에서 범죄자가 재판을 받고 판사에 의해 정해진 형량에 따라 복역하는 방식은 응보적 정의이다.

이 책은 응보적 정의를 무조건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의 처벌 패러다임이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을 돕지 못하는 방식이며, 이러한 처벌이 가해자로 하여금 진정한 반성보다는 반발심과 '책임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갖게 한다는 점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할 ‘우려’는 잘못을 한 사람이 강제적 처벌을 수행한 후에 ‘나는 책임을 졌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만약 가해자가 졌다고 하는 책임이 피해자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과 무관하게 이뤄진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정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101쪽)
나는 가장 강한 처벌은 자기의 잘못된 행위로 피해와 영향을 받은 당사자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102쪽)

 

이러한 견해는 아직도 사법 영역에서 큰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는 이를 부정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학교에 '회복적 생활교육'이 많이 전파되고 있으며, 실제로 학교 생활규정이나 학생 생활지도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학생들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죄의식 없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이때 행위의 결과가 지니는 무게를 제대로 느끼게 하여 자기 잘못을 직면하게 만듦으로써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

말썽꾸러기들에게는 '제대로 된 반성'과 '진정으로 책임지기'가 필요한 것이다.

  

 

잘못에 대해서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그것을 수정하려는 용기있는 행동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피해 당사자의 메시지가 상처 입은 자존감에 새로운 힘을 주었다. 마치 자신의 어두운 면만 비추던 빛이 갑자기 밝은 자아를 밝혀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처럼 가해자에게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란 자기 비난이 ‘나도 괜찮은 인간’이란 자기 긍정의 자존감 회복으로 전환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피해자와 함께 스스로 만든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얽매고 있던 과거의 사건에 마침표를 찍고 매듭을 짓는 상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설 수 이게 하는 기초가 된다. 자기 의지로 행동한 잘못을 자기 의지를 통한 책임으로 갚는 것이야말로 가해자가 해야 할 가장 확실한 책임이자 마무리일 것이다.(126쪽)

 

저자는 청소년과 성인을 막론하고 가해자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의 행위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거시적인 틀에서는 그러한 견해가 올바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인 범죄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경우에는 반드시 위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여 지도하고 교육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은 아직 법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책임질 수 없는 나이이기에 '보호자'가 존재한다. 

배움과 성장으로 가득해야 할 시기이기에 책임도 유예해주는 것이다.

아직 삶을 꽃피우기도 전에 잘못에 대해 회복할 수 없는 무게를 지운다면, 그에 따른 절망감이 그 아이를 범죄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고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잘못을 책임지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학교 현장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회복정 정의가 보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는 회복적 정의 실천 현장을 경험하면서, 회복의 여정은 직면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터널을 거쳐야만 종착점에 다다를 수 있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회복이란 따뜻하고 희망적인 의미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직면이라는 쓴 잔을 마셔야 볼 수 있는 정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32쪽)

저자는 경험을 통해 회복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위와 같이 표현하였다.

일단 벌어진 잘못과 문제를 다시 회복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에는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잘못을 책임지는 방식, 고통이나 아픔을 회복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잘 가르치는 것도 교사가 반드시 담당해야 할 일이다.

아이들이 걸어야 할 어려운 회복의 길에 교사인 우리들이 함께 해야만 하기에 위 구절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교육 분야만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지만, 학교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과 시사점이 많은 책이다.

회복적 생활교육, 회복적 학교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회복적 정의라는 바람직한 패러다임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갈등이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얻을 수 있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