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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온샘의 독서 기록

나의 책 읽기 수업(송승훈 / 나무연필)

 

송승훈 선생님은 국어교사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진 실천가다.

경기도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며 독서교육에 관한 다양한 실천을 하고, 이를 연수와 책으로 알리신 분이다. 

제목처럼 수업을 학생들과 함께한 것 뿐 아니라, 교사들에게 함께 가자고 끊임없이 손짓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송승훈 선생님을 에듀니티의 '교사가 지치지 않는 독서교육'이라는 원격연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지쳐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수 제목을 보자마자, '정말 지치지 않고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도 하지 않고 수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면 당연히 지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에, 연수 내용 자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연수를 통해 너무도 큰 위로를 받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내공이 깊은 선생님이 후배 교사에게 전할 수 있는 노하우를 최대한 전하며, 지치지 않고 함께 가자고 하는 연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 앞에서 책을 들고 함께 읽자고 말할 수 있는 국어선생님이 되었다.

 

  교사가 되어 내가 아끼는 책을 학생에게 권했더니, 나중에 그 책이 교실 뒤에 있는 재활용품함에 들어가 있었다. 얼마나 책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재활용품함에 넣었을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재활용품이 되어버린 책은 그때 내 수준이었고, 내 모습이었다. 내가 독서교육을 어떻게시작했더라 과거를 더듬다보면, 기억의 맨 앞쪽에 그 재활용품함이 있었다. 그 쓰레기통이 내 독서교육의 둥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교사로 와서 아는 것을 교실에서 해보려 하는데 자꾸 실패했다. 그때 내가 아는 수업 지식이 실천성이 약함을 알았다. 아는 건 많은데,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수업 모형을 지식으로는 아는데, 적용할 줄을 몰랐다.(5쪽)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다.

아이들의 학급 생일 선물로 책을 사주었던 때가 있었는데,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보면 어떤 책은 교실에 그냥 뒹굴고 있는 경우가 있곤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정성껏 만들어서 나누어준 학습지, 때로는 자기 자신의 성적표까지.

아이들은 그다지 소중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그냥 쉽게 아무 곳에나 버려둔다.

무심한 녀석들을 탓하는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게 어디 아이들만의 잘못이겠는가.

결국 그 녀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나의 문제를 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송승훈 선생님이 말하고 있는 ‘아는 것을 해보려는데 자꾸 실패’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사 중에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 자체가 없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는다.

하지만 뒤이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시행착오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자의 게으름일 뿐이다.

 

 

  세상은 여러 사람이 모여 아웅다웅하며 사는 곳이라 살다보면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하고 비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자기 삶 가운데 좋은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떠올리면 제정신을 차리기도 하는 법이다. 좋은 사람은 그 존재 자체에 상처를 정화하는 힘이 있다.
  책 읽기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학생들에게 책을 권하고 함께 읽다가도 책 몇 권 읽는다고 해서 애들이 달라지겠어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씨 뿌리는 사람을 생각한다. 가르치는 일은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과 닮았다. 그 씨앗이 아이들의 마음 밭에 있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싹을 틔우기도 하고, 무럭무럭 자라 나무가 될 것이다. 미래를 다 알 순 없지만, 마음에 남는 기억이 하나둘 있을 때 그것이 학생의 삶을 세우는 힘이 되는 것 정도는 안다.(21~22쪽)
  교사라면 이 경계를 잘 맞추어야 한다. 일단 학생들이 어렵다고 마음을 접으면 수업은 곧바로 망한다. 그러니 학생 수준에 맞춰 학생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책이면서 동시에 내용이 있는 책을 골라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교사가 권하는 책이 읽을 만하다고 학생에게 믿음을 얻으면, 그 다음에는 조금 어려운 책을 권해도 묘하게 학생이 그 책을 읽어낼 때가 많다. 그 교사가 권하는 책을 읽을 만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어려운 책도 읽게 된다. 그러다가 종종 다시 쉬운 책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말이다.(32쪽)

 

국어교사로 살다보니, 아이들에게 자꾸 책을 권하게 된다.

읽고 쓰고 말하지 않는 국어수업은 '죽은 수업'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묻기도 한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수업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하면 좋아하는 녀석들이 생각보다 많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스스로 뭔가를 하는 게 더 낫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가?

그런 아이들은 언제 또 책 읽느냐고 보채고 조르기 일쑤다.

 

이쯤에서 교사의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자꾸 좋은 책을 읽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선생님이 책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은 책을 다 읽지 않더라도 책 내용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선별해낼 줄 안다.

이 역시 평소에 꾸준히 독서를 하고, 스스로 책을 골라서 읽다보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다.

물론 독서도 취향이 있기에 교사가 선정한 책이 아이들의 취향과 딱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적·문학적 가치를 고려하여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책을 찾아내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을 비롯해 수많은 기관에서 만든 추천도서 목록을 참고하여 책 선정 기초자료를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이 교실에서 성공적으로 쓰이려면 반드시 교사가 사전검토해보아야 한다.

과연 이 책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인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자신이기 때문이다.

 

 

  책은 국어과에서 읽히는 거라는 생각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학생생활기록부에도 모든 과목별로 독서기록을 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8쪽)

 

어느 시대나 독서는 중요한 교육 방법으로 강조되어 왔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청소년 문해력 저하 문제 등이 겹쳐 독서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개정 2022  국어과  교육과정에서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뺐다가 현장 교사들의 반발로 다시 복원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었다.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자들이 교육적 가치관은 커녕 시대를 읽는 눈도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독서교육은 국어과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작가들이 자신의 삶, 타인의 삶을 담아가며 써내려간 책이 국어교과와만 관계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세상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책을 읽으며, 아이들은 간접경험의 기쁨와 삶의 지혜를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물론 각 교과마다 가르칠 내용이 정해져 있기에 독서 시간을 충분히 줄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거나 다른 교과와 함께 힘을 모아 교과융합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도 해결해나갈 수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무릎 꿇지 않고 작게나마 노력을 기울인다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송승훈 선생님도 이와 같이 생각하고 꾸준히 실천해나가셨던 것 같다.

자신의 이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아이들과 함께 책 읽는 수업을 해나갔고, 책과 연수를 통해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책 읽기 수업을 해보면 교사가 할 일이 꽤 있다. 책을 읽으라고 하고 그냥 두면 책에 몰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타난다. 교사가 신경 써서 교실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해야만 학생들은 책을 잘 읽는다. 학생들이 모두 책을 펴고 거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것을 교사가 확인하고 누구도 떠들지 못하게 한 상태를 만든 다음에 이를 5분간 유지해야만 학생들의 책 읽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학생들을 째려보며 분위기를 제압해 이 상황을 만든 뒤 교사가 교실 앞에 앉아 자기 책을 읽으면 교실은 어떻게 될까? 이후 학생들은 10분마다 10%씩 정신을 잃는다. 그 졸린 분위기가 전염되기 시작하면 교실은 결국 폐허가 된다. 여러 교실에서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이는 과학이다. 일정한 조건일 때 일정한 결론이 나오니 과학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교사는 책 읽기 시간에 교실을 어슬렁거려야 한다. 누군가가 어슬렁거리면 신기하게도 그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은 자꾸 옆을 지나다니는 교사가 신경이 쓰인다. 교사가 왔다 갔다 해야 학생들은 신경이 쓰여서 잠을 설친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계속 정신을 잃는 아이들이 생긴다. 책을 읽으면 정신을 잃는 것은 과학이기 때문에 규칙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나는 잠들었다가 걸린 학생들에게 5분간 일어서서 책을 읽고 5분이 지나면 알아서 앉는 규칙을 만들어서 교실의 질서를 유지한다.(42~43쪽)

 

이러한 부분은 실제로 수업을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점들이다.

시간 때우기 식으로 수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 교사들이라면 필연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기에 다행스러웠고, 송승훈 선생님도 같은 상황을 겪으셨다니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국어교사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책을 읽게 하고 싶은 교사들이라면 꼭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송승훈 선생님 자신의 경험 뿐 아니라 같은 학교의 다른 교과 선생님들의 독서 수업까지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각 교과별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독서교육으로 아이들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