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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온샘의 독서 기록

글쓰기의 최전선(은유 / 메멘토)

 
고교 시절, 문학소녀의 삶을 살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고, 방송작가의 꿈도 품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국어교사로 살고 있다.
현실적인 이유로 감히 작가의 꿈을 소망할 수 없었던 나는, 작가의 삶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직업을 선택했다.
그 무엇으로 살든 작가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글은 삶이 잉태하는 것이기에 삶을 살아가는 자라면 누구나 글을 쓸 자격이 있다.
하지만 고된 삶에 치이다보니 어느덧 작가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은유 작가는 2011년부터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나처럼 작가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혼자의 힘으로 이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결실을 맺게 하고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 대부분 기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삶을 가장 중심에 놓고 치열하게 자기자신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행복했으나 뭔가 좌우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 같았다. 나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은 시시때때 충돌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내가 강의를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게 못할 짓 같았으니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에는 묘한 죄의식이 따랐다.(7쪽)
글을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불행한 상황이 뚝딱 바뀌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줄 한 줄 풀어내면서 내 생각의 꼬이는 부분이 어디인지, 불행하다면 왜 불행한지, 적어도 그 이유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낱말 하나, 문장 한 줄 붙들고 씨름할수록 생각이 선명해지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는 즐거움이 컸다. 또한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을 글로 푹푹 삶아내면서 삶의 일부로 감쌀 수 있었다. 어렴풋이 알아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9쪽)

 
책을 읽으며 은유 작가가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자 작가로서 바로 서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하는 엄마로서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삶의 국면마다 마주치는 갖은 문제들을 고통 속에서 벗겨내거나 밟고 일어서는 일 역시 나와 같았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사연을 갖고 있기에 스스로 생활을 가꾸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말에 공감할 것이라 느꼈다. 
 
 

세상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는 자들의 언어로는 이 세상의 모순과 불행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미 어떤 가치 체계에 휘말려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을 배려하지 않았음을.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 이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이다.(16쪽)

 
사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나의 삶, 오롯이 내 것인 삶.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 이 공간에 서 있는 내 몸의 주인으로서의 삶.

삶은 나만의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주인'이어야 한다.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주인'으로서 '손님'과 함께 하는 일이어야 한다.

 
 

글쓰기도 요리와 다르지 않다. 우선 내 생각을 글로 나타내면 남의 말을 잘 알아듣게 된다. …(중략)… 글쓴이의 처지가 헤아려지며 문제의식과 깊이 공명할 수 있다. 글쓴이가 자료를 찾기 위해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지, 적합한 단어 선택을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글쓰기는 글 보는 눈을 길러주며, 글 보는 안목은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준다. 아울러 남의 말을 알아듣는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해 구체적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 마음 쏠림이 또 다른 글쓰기를 자극한다.(20쪽)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으로, 부단한 연마가 필요하다. 자기 안에 솟구치는 그것에 대해 알아채는 감각, 자기 욕망과 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감성적 역량, 세상을 읽어나가는 지식과 시선 등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삶의 장인이 될 수도 있고 아니될 수도 있지만 더 망가지지 않고 살아갈 수는 있다.(43쪽)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44쪽)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숙련된 작가도 자신의 글을 수없이 고치고 다시 쓴다.
작가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의미 있는 구절이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교육과정에 정해진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공교육의 특성 상, 학생들은 학습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과정을 꼭 거치게 된다.
가장 수준 낮은 동기유발은 '시험에 나온다'이다.
단기적으로는 그것이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그렇게 배운 바는 시험이 지나고 나면 폐기처분되고 만다.
가장 효과적인 동기유발은 학생들의 '삶'과 '쓸모', '재미'이다. 
자신에게 유의미하다고 느끼는 것이라면 배우지 말라고 해도 덤벼들 것이다.
글쓰기를 가르칠 때에도 이처럼 삶의 필요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잘 살아가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수업방안과 자료를 고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치열하게 살아온 자로서 자신만의 글을 만들어낸 작가의 가치관과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문장이 좋아 술술 읽히기에 누구에게든 권하기 좋은 책이다.
작가의 꿈을 가진 고등학생들이 작가로서 바람직한 방향성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진로독서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며 멀어져가던 작가의 꿈을 다시 붙들어 볼 용기가 생겼다.
나 역시 작가의 말처럼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는 '나만의 글'을 만들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