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칭찬할 점을 한 가지 꼽자면, 국어시간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실시하게 한 것이다.
현재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학교 현장에 잘 정착되고 있다.
웃지 못할 한 가지 이야기는,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이를 없앴다가 현장 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다시 부활시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점이다.
교육적 가치관을 제대로 확립하지도 못한 자들이 교육 정책을 입안한다는 사실 자체는 안타깝지만, 현장 교사들이 독서 수업의 교육적 가치를 주장하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국어교사의 입장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국어 수업을 국어 수업답게' 만들어주는 좋은 활동이기도 한다.
독서도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적절한 지도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교사가 독서 자세나 습관을 잠시나마 살펴주는 것은 수업의 성패와 관계없이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고 바람직한 활동이라고 해도, 교사의 수고와 노력 없이 효과를 거두는 수업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검증된 수업 방법일수록 교사에게 지워지는 책임감의 무게는 더 커지는 법이다.
학생이 즐겁고, 교사도 즐거운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더 꼼꼼히 계획하고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수업을 유지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교사는 수업 방법 면에서 '독서 활동 방식'과 '수업에 활용할 도서'를 결정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는 독서 활동 방식으로 아래와 같은 4가지 유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1. 모두 같은 책 읽기
1-1. 개인별로 읽기
1-2. 모둠원과 함께 읽기
2. 서로 다른 책 읽기
2-1. 개인별로 원하는 책을 선택하여 각자 읽기
2-2. 모둠별로 한 권의 책을 선택하여 함께 읽기
모두 같은 책 읽기
같은 책 읽기는 학생들의 흥미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이므로 생각없이 적용하면 실패하기 쉬운 방안이다.
하지만 가르쳐야 할 바나 교육 목표가 분명할 때에는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이 유형의 수업이 목표를 무난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몇 권의 도서를 제대로 검토하고, 자신이 가르칠 학생들에게 적절하다는 판단이 드는 책을 주제도서로 선정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책을 선정할 때에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는 가치나 지식, 쟁점이나 소재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이를 다룬 도서 목록을 5~10권 정도 확보해야 한다.
전국국어교사 모임이나 각 단체에서 제시하는 권장도서 목록을 활용해도 되지만, 최신 서적까지 모두 아우르기 위해서는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 주제어를 입력하여 관련 도서를 검색하는 것이 좋다.
요즘 인터넷 서점은 책의 차례를 정리해놓기도 하고 미리보기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책 구입 시 실패 확률을 줄여준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검색을 통해 주제와 구성, 수준 등에서 가르칠 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인지를 가늠해본 후 3~4권 정도의 책을 구입하거나 대여하여 전체 내용을 직접 읽어본다.
검토 작업을 거치다보면, 예상과 다른 책들도 많다.
또한 학생들의 수준과 상황은 학교마다, 학급마다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가르칠 사람이 직접 '내가 가르칠 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수업 적용 성공률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한 권의 책을 전체에게 읽힐 생각이라면,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땀 한 땀 공들여 주제도서를 선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책 읽기
다른 책 읽기는 자율권과 선택권을 존중해주는 방법이기에 학생들의 호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다.
학생들의 자율권과 선택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능동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개인별로 원하는 책을 선택하여 각자 읽기'는 가르칠 내용보다는 개인의 흥미를 중시하며 학생들이 책과 가까워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의 경우 교육적 개입이 가장 적은 방식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적 효과를 거두고자 할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모둠별로 한 권의 책을 선택하여 함께 읽는 방식은 학생들의 자율권과 선택권, 교사의 교육적 지향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이 방법은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 모둠을 편성하고, 모둠별로 읽을 책을 선정하는 사전 활동을 꼭 실시해야 한다.
학생들은 여러 권의 책을 놓고 친구들과 의논하며 순위를 매기는 과정을 거치면서 간단하게나마 토의, 토론, 협의, 절충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최종적으로 자신들이 선택한 책을 읽기 때문에 자율권과 선택권을 어느정도 보장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책을 개인별, 모둠별로 읽을 때에도 교사가 미리 책 목록을 확보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대상 도서를 모두 정독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검토한 후에 선정하여도 무방하다.
개인별 독서 활동을 실시할 때에는 학생 수의 1.5배에서 2배 정도로 양질의 도서를 다양하게 확보하도록 한다.
모둠별 독서 활동은 모둠 수의 2~3배 정도로 책을 선정하면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
요즘에는 교육청 예산이나 학교 자체 예산을 활용하여 도서를 구입,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을 활용하여 구입할 경우에는 책을 모둠원 인원 수보다 한 권씩 더 준비해두면 비상시(깜박하고 책을 못 가져왔거나, 분실한 학생이 있을 경우)를 대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4명을 한 모둠으로 하여 총 6모둠을 편성한다면, 12~18종의 책을 선정하고 1종 당 5권씩 책을 마련한다.
학생들이 책을 직접 구입하여 읽게 하는 경우라면, 책 선정 시에 검토용으로 제공하는 1권의 책을 활용하여 책을 가져오지 못했거나 분실한 학생에게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형성 기법 적용하기
질문하는 독서 수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활동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질문 초점을 제시하여 학생들이 수업 목표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바른질문연수소 공동 책임자인 댄 로스스타인과 루스 산타나는 2011년에 발간한 <MAKE JUST ONE CHANGE ― Teach Students to Ask Their Own Questions>에서 질문 형성 기법을 제시하였다.
이를 경인교대 국어교육과에 재직 중인 정혜승 교수가 번역하여 사회평론아카데미를 통해 <한 가지만 바꾸기 ― 학생이 자신의 질문을 하도록 가르쳐라>(2017)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행하였다.
독서 수업에 질문 형성 기법을 적용하려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 교사가 아닌 학생에게 질문하는 책임을 맡겨 학생의 학습 주체성을 회복한다.
② 끊임없이 생각하며 읽는 행위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깊이 있는 독서 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③ 대화와 탐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 찬 교실을 만든다.
위의 이유나 목적을 100%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독서 수업에 질문 형성 기법을 적용하면 훨씬 활기찬 수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 형성 기법은 교사가 질문 초점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질문 초점은 학생의 질문에 시동을 걸기 위한 자극이므로, 모든 매체나 형식, 짧은 진술이나 시청각 자료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학생에게 질문하여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문형 문장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간략하고 단순한 어구나 구절, 주제로 분명하게 진술해야 한다.
질문 초점은 독서 수업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토대로 교사가 사전에 준비한다.
질문 초점은 아래와 같은 단계를 거쳐 설계할 수 있다.
1. 목적을 정의한다. | 질문 초점을 사용함으로써 무엇을 달성하기를 원하는가? 당신의 교수 목적과 학습 결과를 항상 기억하라. ◾ 흥미를 일으킨다. ◾ 새로운 사고를 자극한다. ◾ 이해를 심화한다. ◾ 학생 이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
2. 가능한 아이디어를 생성한다. | 가능한 질문 초점에 대해 여러 개의 아이디어를 열거한다. 당신의 목적과 학생들이 이 질문들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기억한다. 모든 유형의 아이디어를 진술, 그림 등 다양한 형식으로 열거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는 것이 효과적인 초점을 발견하기 위한 열쇠이다. 때로 처음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아이디어가 아닐 수 있다. 여러 개의 아이디어가 있을 때, 평가 과정을 통해 당신의 목적에 부합하고 기준을 충족하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선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진술, 시각 자료 및 다른 전략을 열거한다. ◾ 단순한 아이디어를 찾는다. ◾ 진술은 가능한 간결하고 단순하게 유지한다. |
3. 각 아이디어의 장점과 단점을 확인한다. | 열거된 각 질문 초점 아이디어를 보면서 이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생각한다. 기준을 염두에 두고 장점과 단점을 확인한다. ◾ 명확한 초점이 있다. ◾ 질문이 아니다. ◾ 새로운 방식의 사고를 자극하고 촉발한다. ◾ 교사의 선호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부분을 통해 당신은 초기 평가를 할 수 있고, 당신의 목적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로 좁힐 수 있다. |
4. 하나의 질문 초점을 선정하고, 네 가지 기준을 토대로 평가한다. | 목록에서 당신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아이디어 하나를 고르고, 이것이 단계 3에 열거된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지 살펴본다. 만약 선정한 질문 초점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질문 초점을 수정하거나 다른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평가한다. 만약 이것이 기준을 충족하면, 설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
5. 학생이 생각해낼 수 있는 질문을 상상한다. | 당신은 이제 당신의 목적에 맞는 질문 초점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단계로, 학생들이 물을 가능성이 있는 질문들을 생각한다. 이 단계의 목적은 당신의 초점이 학생의 질문 생성을 도울 가능성과 그 질문이 흘러가는 방향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당신은 이 질문들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
<한 가지만 바꾸기(댄 로스스타인·루스 산타나)>에서 인용
이 표를 보면서 질문 초점을 좀더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아래와 같은 표를 만들어보았다.
이 양식을 활용하면 좀더 쉽게 질문 초점을 만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와 더불어 효과적인 질문 초점을 만들기 위한 조언도 덧붙인다.
이 역시 <한 가지만 바꾸기>(2017)에서 인용하였다.
☑ 하나의 목적을 정하고, 질문 초점은 가능한 한 단순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라. 이 기법은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교사는 다양한 질문 초점 진술을 가지고 한 단원 내에서 여러 번 이 과정을 사용할 수 있다.
☑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생성하거나, 질문 초점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라. 생성된 아이디어들을 기준으로 토대로 평가하는 단계를 건너뛰지 말라.
☑ 당신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라. 당신의 질문 초점을 가지고 동료들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하라. 두 개나 세 개의 예를 시험해보라.
☑ 대안을 준비하라. 제시할 질문 초점에 대한 대안을 미리 계획하라. 교사가 선정한 질문 초점이 학생의 질문 생성을 돕는 데 실패한다면 이 대안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네 가지 기준 중 당신의 선호나 성향을 질문 초점에서 배제하는 것이 가장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를 명심하되,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지는 말라. 대신 질문 초점을 사용한 후, 자신이 너무 많은 또는 너무 적은 지시를 준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고, 다음 질문 초점을 사용할 때 이를 반영하라.
☑ 사진이나 다이어그램 또는 등식을 질문 초점으로 사용할 때는 이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시각 자료나 특정 자료를 질문 초점의 일부로 제시할 때에도 제시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진술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알지 못하고, 질문을 생성하지 못할 것이다. 자료에 동반되는 진술도 효과적인 질문 초점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국어교사로서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자극할 요량으로 이 기법을 적용하게 되었지만, 질문 형성 기법은 교과를 막론하고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교수법이다.
수업에 진심인 교사라면 수업 자체보다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할 '수업 준비'에 더 많은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긴 호흡을 가지고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 수업이기 때문에,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사전 준비를 마쳐야 한다.
특히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인 1, 2월의 겨울 방학을 활용하여 미리 준비해두기를 권하고 싶다.
독서 수업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바나 가르치고 싶은 주제 등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관련 도서를 미리 검토해보면서 수업에 활용할 도서 목록을 확보해두면 일 년 내내 든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학생에게 독서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고, 교사에게는 지치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아이들이 책을 즐기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인 수업이니, 성패를 걱정하기보다는 일단 시도하고 가꾸고 실천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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